천년고찰 관음기도도량 무위사
 
 
 
작성일 : 17-12-09 09:14
다니야의 경 3
 글쓴이 : 무위사
조회 : 64  

다니야의 경 3


커다란 구름이 골짜기와 언덕을 가득 채우면서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빗소리를 듣고 다니야는 이와 같이 말했다.

다니야 - 우리는 거룩한 스승을 만나 얻은 바가 참으로 큽니다.

            눈을 갖춘 님이시여,

            당신께 귀의하오니, 우리의 스승이 되어 주소서.

            위대한 성자이시여,

            아내도 저도 순종하면서 행복한 분 곁에서 청정한 삶을 살겠으니,

            태어남과 죽음의 피안에 이르러 우리로 하여금 괴로움을 끝내게 하소서.

 그때 악마 파피만이 나타나며 말했다

악마 파피만 - 자식이 있는 이는 자식으로 인해 기뻐하고 ,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기뻐합니다.

                   집착의 대상으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기쁨이 있으니,

                   집착이 없는 사람에게는 기쁨도 없습니다.

부처님 - 자식이 있는 이는 자식으로 인해 슬퍼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 때문에 슬퍼합니다.

             집착의 대상으로 인해 사람에게 슬픔이 있으니,

             집착이 없는 사람에게는 슬픔이 없습니다.



인도에는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공기인 계절풍이 히말리야 산맥의 찬 공기와 만나면 우기에 들어서는데, 그 때 많은 비가 내린다.

우리나라의 장마와 같은 현상이 90일간 지속되는 것이고, 그 기간에 비구들은 행각을 멈추고 안거에 들어가는 것이다.

오늘날 안거의 시작인것이다.

다니야는 갠지스 강 지류인 마히 강변 언덕에 소를 치며 살고 있었다.

3만 마리의 황소와 2만 7천 마리의 소에서 젖을 짜며 예쁜 부인과  7명의 아들과 7명의 딸, 그리고 많은 하인들을 거느리고 살고 있었는데, 우기가 되기전 다니야는 많은 비가 내려도 물이 차지 않는 지역을 찾아 우사를 짓고 거처를 마련하여 놓았다.

검은 먹구름이 몰려들었지만, 우기의 준비를 마친 다니야는 젖소에서 젖을 짜고 송아지들은 우리에 묶고, 모기들로부터 소들을 위해 사방에 연기를 피우고,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 식사를 대접하고 자신도 우유로 식사를 하고 큰 침상에 누워 행복을 누리며 만족하였다

그때 뇌성벽력을 울리기 시작했고 우디냐는 모든 준비를 끝 낸 만족감에서 이 노래를 읊은 것이다.

마침 부처님께서는 우디냐의 집에 탁발을 가셨다가 이 노래를 들으셨고, 다니야의 노래에 댓구가 되는 게송을 읊으신 것이다.

우기에 들어서기전 모든 준비를 마친 다니야는 만족감과 자신감으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두렵지 않았던 것이고,

탐진치 삼독으로부터 자유로우신 부처님께서는 윤회와 해탈의 자신감으로 번뇌의 비가 두렵지 않으셨던것이다.

탁발을 나오신 부처님께 아내와 함께 공양을 올릴 때 장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부처님과 노래를 주고 받으며 다니야는 감동을 받아  어느새 귀의하게 된 것이다.

눈을 갖추 신 분이라고 다니야는 찬탄했다.

눈에는 다섯 가지의 눈이 있는데, 초기 경전에는 자연의 눈, 하늘의 눈, 지혜의 눈, 보편의 눈, 부처의 눈이다.

이 다섯 눈이 대승 경전인 금강경에서는 자연의 눈이 육체의 눈으로, 보편의 눈이 법의 눈으로 바뀌었다.

다니야와 그의 아내가 태어남과 죽음의 피안에 이르러 괴로움을 끝나게 해달라며 부처님께 귀의하자, 다급해진 악마 파피만이 나타나서 다니야에게 기쁨에 대해 속삭인다.

          자식이 있는 이는 자식으로 인해 기뻐하고 ,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기뻐합니다.

          집착의 대상으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기쁨이 있으니,

          집착이 없는 사람에게는 기쁨도 없습니다.

이를 아신 부처님께서는 다니야와 악마 파피만에게 슬픔과 슬픔을 넘어선 진정한 기쁨에 대해 말씀하신다.  

         자식이 있는 이는 자식으로 인해 슬퍼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 때문에 슬퍼합니다.

        집착의 대상으로 인해 사람에게 슬픔이 있으니,

        집착이 없는 사람에게는 슬픔이 없습니다.

악마는 집착의 대상으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기쁨이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돈에 집착하는 사람은 돈이 생길 때 마다 기뻐한다.

물건에 집착하는 사람은 물건이 생길 때 마다 기뻐한다.

자식에게 집착하는 부모는 자식이 성장하며 부모 말을 잘 들을 때 기뻐한다.

그러나 집착은 욕심이 아닐까????

돈에 집착하는 사람은 돈이 생길 때마다 기뻐하지만, 집착이 욕심으로 변하여 더 더 많은 돈을 원하게 된다.

더 더, 남보다 더 더 많은 돈은 원하지만 원하는 만큼 돈이 안 생기면 기쁨이 분노로 변하게 되고, 그 분노가 폭력성을 띠게 되기도 하고, 슬픔과 우울증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물건이나 자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결국 우리가 기쁨의 대상으로 알았던 것들이 욕심으로 인해 폭력과 슬픔과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집착 없는 사람은 슬픔이 없다.

집착 없는 사람은 기쁨도 없다.

집착 없는 사람은 두려움도 없다.

슬픔도 기쁨도 두려움이 없기에 죽음에 대해 무슨 미련이 있으리오.

집착 없는 사람......

우리 부처님.